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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가 아름다운 도량장군산 영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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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영평사 주지 광원 환성 대종사 “집착 없이 베푸는 무주상(無住相) 보시가 곧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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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평사 작성일25-10-04 11:11 조회6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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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영평사 주지 광원 환성 대종사 “집착 없이 베푸는 무주상(無住相) 보시가 곧 복지”

세종시 장군면 장군산 영평사는 꽃의 채색이 참 아름답다. 그만큼 꽃이 선사하는 장엄미가 빼어나다. 영평사에서 마주하는 꽃은 사람의 심성을 들뜨지 않도록 해서 좋다.

사람들은 여느 산사처럼 고즈넉하고 고요한 영평사에서 꽃을 만나 사유한다. 그리고 치유를 얻곤 한다.  

순백의 구절초가 꽃망울을 머금고 꽃무릇이 선홍빛으로 물든 가을 영평사는 마치 꽃이 법석을 연 듯 사람들을 반겨 맞는다.

기자가 찾은 날, 때 마침 가을비가 법비(法雨)처럼 내리는 영평사 서상원에서 광원 환성 대종사를 만나 지혜와 자비의 법문을 청해 듣는다. 

광원 환성 대종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강조한다. 불교에서 무주상 보시는 집착 없이 베푸는 실천적 수행을 일컫는다. 환성스님은 보시가 곧 복지라고 말한다. 종교가 복지 분야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환성 스님의 오랜 신념이다.

“불교적으로 볼 때 나눔은 정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질의 나눔도 중요하다. 물심양면 모두를 아우를 때 진정한 나눔이 이뤄진다. 성인들의 삶을 보자. 성인들은 그러한 삶을 살았던 분들이다. 불교에서는 남을 위해 베푼다는 마음 없이 보시하라고 가르친다. 그런 것이 무주상 보시다. 복지 분야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못지않게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종교계도 복지와 나눔 사업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종교인의 사회적 역할이다.”

환성스님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고 있는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다.

영평사는 구절초축제와 낙화축제로 유명하다. 영평사 구절초축제와 낙화축제는 환성스님의 무주상 보시의 주요한 실천 사례로 꼽을만하다. 두 축제 모두 세종시를 대표하는 축제다. 영평사 구절초축제는 올해 26회째(10월 11일부터 16일까지)를 맞는다. 2016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낙화축제는 다음달 17, 18일 이틀간 열린다. 전통 등(燈) 전시를 더한 올해 낙화축제는 관람객 안전을 고려해 처음으로 유료입장 예약제로 전환했는데 인터넷 예약 시작 20분 만에 매진을 기록, K-컬처 대표 축제로서 도약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환성스님의 구절초 사랑은 참 유별나다. 그는 야생 구절초에 관한 한 생태 전문가라고 불릴만하다. 구절초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던 시절이다. 산길에서 우연히 한 떨기 야생 구절초를 만났는데 그때 받은 인상이 너무 깊었던 모양이다. 선방에 앉아 있어도 고결한 자태가 자꾸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구절초의 꽃말이 순수, 어미니의 사랑이다. 구절초는 실제 모습이 고요해서 좋다. 그래서인지, 수행자의 꽃이라고도 일컬어진다.”

환성스님은 1987년 장군산에서 영평사를 중창불사하면서 야생 구절초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장군산에 처음 왔을 때 산기슭에 야생 구절초가 자라고 있더라. 30년 만에 만난 도반보다 더한 반가움이었다. 2000년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구절초 축제다. 영평사 구절초축제는 나눔의 실천이다. 사람들이 꽃으로 행복해하고 치유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원했는데 가꾸기가 참 까다롭다. 야생에서 멀리 번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햇볕이 부족해도, 습해도 잘 자라지 않는다. 가물어도 그렇다. 활엽수 밑이나 큰 풀 아래서도 번식하기 어렵다. 구절초를 백두구절초, 제주구절초, 낙동구절초, 파주구절초 등으로 분류하는 것도 이러한 생육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영평사에서 자라는 구절초는 영평구절초로 불러야 한다. 수행자가 가꾸는 영평구절초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 순화하는 마력을 지닌 꽃식물이다.”

요즘 영평사는 꽃무릇이 장관이다. 봄에는 순백의 돌배나무 꽃이 아름답다. 그 즈음 영평사는 겹벗꽃(왕벗꽃)으로 꽃대궐을 이룬다. 환성스님이 꽃을 가꾸는 것은 선농일치의 승가 전통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내년이면 환성스님이 선방 수행하던 도반들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세우고 폐사지에 영평사를 중창불사한지 40년째를 맞는다.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던 중, 중생들을 무명에서 벗어나도록 하자고 원력을 세워 불사를 이룬 것이 영평사다. 

“처음에는 도반 몇이 영평사 중창불사에 참여했으나 나중에는 혼자더라. 그만큼 쉽지 않은 노정이었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산승이 시주받아 시작한 일을 중도에 그만둔다는 것은 배신이라고 여기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처음에는 버섯 등 농사도 짓다가 1년 후부터 법회를 연 일이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비록 도는 완성하지 못했으나 부처님 말씀을 온전히 전하며 대중과 함께 수행하는 일도 출가 불자의 소명이니 수행하며 일하고 전법하는 원력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다. 생명 경시 풍조도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대종사에게 불교적 해법이 있는지 들어본다.

“불교에서는 욕심·성냄·어리석음을 탐진치(貪瞋癡)라고 말한다. 인간을 해롭게 하는 삼독(三毒)이다. 청산가리보다 천배, 만배 더한 맹독으로 보면 된다. 탐진치는 서로 우선 순서를 가릴 수 없다. 자기만 가지려고 탐욕하면 탄핵당하는 것이 우주 법계의 이치다. 탐욕은 어리석음에서 온다. 어리석어 무지하다는 것은 인과응보의 진리를 모른다는 의미다. 우주 삼라만상은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생성, 유지하고 윤회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인과응보의 도리를 인식만 하더라도 세상이 맑아질 것이다.”

환성스님에게 법문 때 자주 인용해 사부대중에게 전하는 경전 내용이 무엇인지 청해 묻자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教)”라고 답한다.

스님이 이야기한 것은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내용의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다.

칠불통계게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한 일곱 부처님이 공통적으로 밝힌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표현한 게송이다. 환성스님은 칠불통계게에 대해 “앞으로 어떤 성현이 출현해도 이 보다 더한 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직접 하신 격언(格言)이고 금언(金言)이다. 불교 가르침의 궁극인 셈이다”라고 강조한다.

환성스님은 진정한 행복에 대해 어떠한 깨달음을 갖고 있을까. 스님이 밝힌 즉문즉답 내용은 이렇다. 

“누구든 생사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춰야 진정한 행복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생사윤회가 없는 세계에 들어가야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참선을 통해 자기의 본래 성품(佛性)을 보고 진리를 깨달아 견성오도(見性悟道)했다 하더라도 생사윤회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무아미타불’ 육자염불(六字念佛)은 생사윤회를 끊어낼 수 있는 좋은 수행법이다. 진정한 유토피아에 들어갈 수 있는 수행법이 육자염불이다. 호흡명상, 들숨날숨 수행도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어 좋다. 불교에서는 믿음, 발원, 염불수행을 통해 구품연대(九品蓮臺)에 태어나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환성스님의 출가 이야기는 어떨까. 동진출가(童眞出家:20세 전 출가자)인 스님은 10대 초반, 청소년기 때부터 불교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 때 결심한 것이 출가수행이다.

“어릴 적에 불교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서산 고향 집 근처 작은 사찰에 다니셨는데 밖에 나가 공부하던 형님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다. 집안 어른 한 분이 목사가 돼서 세운 마을교회에서 미군 옷가지를 나눠주곤 했는데 그것 받는 것이 창피해서 안 나갔다. 집에서 예배를 보면 참여하지도 않았다. 중학교 2학년 실습시간에 학교 근처 도비산으로 부엽토를 파러 갔는데 한 사찰에서 비구니스님 서너 분이 채소밭을 가꾸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출가를 마음먹었다. 그 뒤로 출가 결심을 굳혀 나갔다. 대학 입학시험에 낙방하고선 가족들에게는 대학입학 재수 공부하러간다고 알리고 책 들고 나가 곧바로 출가했다. 서산 간월암에서 행자 생활 1년 한 이후 선방에서 수행을 이어갔다.”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준 은사가 있기 마련이다. 승가 역시 그렇다. 환성스님은 무엇보다, 은사 응담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크다. 환성스님에게 큰 가르침을 준 은사 스님 이야기를 이어가본다.

환성스님은 은사 스님에 대해 “평생 무섭게 수행하고 철저히 청빈한 삶을 사셨던 선사였다. 서너 벌 누더기와 발우 하나로 사셨던 분”이라고 말한다. 환성스님이 쓴 법문집을 보면 은사스님이 어떠한 수행자이고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잘 나타난다. 법문집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고목의 무언설법을 만나는 계절이면 은사스님이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스님께서는 중이 명리를 쫓아 백년을 사는 것은 마음 닦으며 하루를 사는 것만 못하다 하셨다. 개인적으로 신도를 두고 공양 받으신 적이 없으시다. 평생 입으신 옷은 남들이 입다 버린 몇 벌 누더기가 고작이었다. 은사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출가본지(出家本志)를 한 시도 망각한 일이 없다. 스승님과 부처님 삶에 비추어 채찍질하는 데 게을리 않고 있는 것이다.”

환성스님은 경전보다 직접적인 깨달음을 중시하는 사교입선(捨敎入禪)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견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스님의 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출가해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등을 공부할 때다. 은사스님에게 마음 밝히는 것에 정진하겠다고 말씀드리고 경전 배우는 것을 그만 뒀다. 평생 선수행으로 후학을 지도하는 선사(禪師)이신 은사 스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참선 수행자는 경전도 보지 말고 참선만 오로지 해야 한다는 풍조가 있었고 나도 비교적 그렇게 수행한 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부처님과 선사들의 가르침을 깨닫고 닮아가려면 경전과 어록을 공부해야 됨을 깨달았다. 수행하다 퇴굴심(退屈心)이 생겨 마음이 흩어질 때 경전을 독송하고 어록을 보면 재발심으로 가다듬게 된다.” 

환성스님은 인터뷰를 끝내면서 공덕의 의미에 대해서 “공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물질적 공덕이다. 다른 하나는 중생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공덕인데 이것이 진정한 공덕이다”라고 말한다.

출처 : 뉴스세종·충청(https://www.newssejong.com) - 이선형 기자(shl03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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