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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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평사 작성일17-10-03 13:55 조회5,537회 댓글0건본문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계절 따라 각기 다른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어 정서적으로 비교적 좋은 품성을 가지게 된다는 우리나라도 근래 몇 년 새로
봄과 가을이 완연히 줄어들어 봄인가하면 어느덧 여름이 덮쳐 자랑 아닌 사계절의 자랑거리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금년 가을도 성급하게 달려든
추위에 힘없이 떠밀려 가는 것 같아 울긋불긋하던 단풍이 가엽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가을이 짧기는 짧지만 그래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무상의 법칙! 인생무상(人生無常)의 법칙!!!
‘정신적인 것이거나 물질적인 것이거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현재의 모습으로
잠시도 존재하지 못하고 계속 변화 한다’는 무상(無常)의 법칙을 설파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더욱 생생하게 울려옵니다.
불자님들은 이 가을
단풍을 보면서 무슨 감회라도 있으셨는지요?
1,2십대 청소년이라면 곱게 물든 단풍잎 몇 장을 따서 책갈피에 끼워둘 것이고, 3,4십대
청장년이라면 아름다움에 빠져 자신의 젊음을 뽐낼 것이며, 5,6십대 설늙은이라면 이유 모를 씁쓸한 느낌이나 다소 조급하고 초조한 심정일 것이고,
7,8십대의 황혼의 빛조차 힘을 잃어가는 노장층이라면 원인 모를 서글픔과 두려움이 엄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을 비교적 찬찬히 살피면서
다져온 사람이라면 나무들이 겪었을 갖은 풍상(風霜)을 위로하고 나름의 결실들을 찬미하며 자연의 경이로운 변화에 경탄하면서 담담하게 ‘낙엽은
반드시 뿌리로 돌아가는’ 도리에 합일(合一)하는 조용한 미소를 머금기라도 할 것입니다.
산승은 비교적 일찍 늙은 편인가 싶습니다. 어려서도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했고, 소년기 막바지에 출가한 산승은 유난히 노장(老長=長老)님들을 잘 따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장로님들이
덕이 있고 없고, 법력(法力)이 높고 낮고를 가리지 않고 마냥 존경스러워 가까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어느 소슬한 가을날 노덕님들께서 나무
그늘에 앉아 사중(寺中) 일로 마냥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주지스님을 딱한 냥 넌지시 바라보시면서 ‘세속의 지혜 있는 사람도 5십이 넘으면 잡다한
일 다 정리하고 자기 일을 짚어 보는데 저 주지는 언제나 철이 들려는지 …’ 하시면서 한편 걱정해 주시는 듯, 한편 비아냥거림같이 나누시던
말씀들은 산승에게 평생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저런 노덕님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매사 노인스러워 스스로도 젊은이들과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아직 젊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만나는 분들이 산승의 나이를 십년이상 아래로 보아주는 덕담에
속아 은근히 자만에 빠져 인생살이에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금년 가을은 이렇게 멍청한 산승에게 큰 교훈을 내린 의미 있고 고마운
계절입니다.
가을 초입에 모 행사장에서 지인이 기념으로 찍어 온 사진을 보는 순간 아찔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산승의 옆모습을 찍은
사진인데 거의 절망적인 감정이었습니다.
사진이 얼마나 정교한지 옆에서 보이는 얼굴이며 목덜미며 탄력을 잃고 늘어지는 피부! 이건 완전히
할아버지의 그것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매일 삭발 할 때마다 서리 맞은 옆머리를 보면서 무상을 느끼는 바이지만 이렇게
충격으로 와 닿은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나도 별수 없이 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에 접어들었구나!
‘여보게 환성! 자네도 별수
없네그려!
다음 생을 맞이할 준비는 되었는가?’
한동안 이런저런 상념과 독백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가을은 바로 ‘낙엽은
반드시 뿌리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보여 주는 계절입니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 피었던 잎이라도 반드시 뿌리로 돌아가 자기들을 길러준 뿌리를
덮어주고 대지와 동화되어 다시 뿌리 속으로, 줄기로, 가지로, 잎으로, 꽃으로, 열매로 그리고 끝내는 모든 생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서로 연결되어 이렇게 주고받으면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산과 들의 활엽수 침엽수 등 온갖 나무들
그리고 가지가지 풀들은 서로 어우러져 주고받을 뿐 다툼이 없으며 그 속에 깃드리는 온갖 짐승이며 풀벌레들까지도 거듭되는 삶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드립니다.
인간, 유독 인간만이 너와 나로 나누고 혼자 가지려 들고 다투고 분노하고 죽을 줄은 모른 채 살려고만 발버둥
치지요.
뭇 생명들처럼 온 몸으로 살고 죽음을 받아드리고 주고받을 줄을 모르는 가장 가련하고 미숙한 중생이 인간 중생이라고 말하면 동의할
사람 없겠지만 산승이 보기엔 그렇습 니다.
온 산을 곱게 물들였던 나뭇잎들이 모두 뿌리로 돌아가고 있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산승은 지나온
역정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내가 떠나 온 그 뿌리로 온전히 돌아갈 준비를 더 착실히 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아니 온 몸으로 현재의
생을 온전히 살고자 합니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가네! …”
나무아미타불!!!
光源幻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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