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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랑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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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평사 작성일18-09-18 11:32 조회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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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사랑의 마음

                                                                                광원환성

 

부처님의 사랑 즉 자비(慈悲)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불교의 근본 사상인 자비는 불교 윤리의 최고 덕목이며 깨달은 분들의 삶 자체이기도 합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가르침들 역시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사람들만큼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썼던 시대도 없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오십 대의 기성세대들은 위아래 가리지 않고 사랑해요 사랑합니다하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져 쑥스럽고 당황할 때도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이 세대들은 부부간에도 터놓고 사랑한다는 말하기를 쑥스럽게 생각했거니와 위 어르신들은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었기에 아버지 사랑합니다, 혹은 선생님 사랑합니다,”라는 등의 말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세대이지요.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속마음은 어떠하던 손 위 아래를 가리지 않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같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래서 희망이 보이는 세상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직장에 나아가서 일하면서도 몇 번씩 사랑 전화를 하지 않으면 동반자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속사정들을 들여다보면 불행한 시대인 듯싶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또한 존경이나 공경의 마음은 없어지고 사탕 같은 사랑노래만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국어사전에나 얹혀 남아 있게 될 존경과 공경의 낱말들을 상상해 봅니다.

사랑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가 있지요. 자기사랑 자식사랑 부부사랑 형제사랑 친구사랑 이웃사랑 고향사랑 나라사랑 문화사랑 자연사랑 황금사랑 권세사랑 명예사랑 ……, 이런 사랑들도 참 좋은 것이지만 이러한 사랑은 갈증 나는 사랑이라 하여 갈애(渴愛)라고 합니다. 탐낸다 하여 탐애(貪愛)라 하고, 이성에 대한 욕구를 애욕(愛慾)이라 합니다. 한쪽만 사랑하면 편애(偏愛) 이지요. 갈애 탐애 애욕 편애 이런 사랑은 늘 조건이 붙어 결국은 원망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한계가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탐애나 애욕을 떨쳐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관심이나 배려는 진정한 자비(사랑)는 아니며 그러한 사랑은 불행이라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사랑은 무연자비(無緣慈悲) 즉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산승은 이 무연자비를 큰 사랑이라고 풀어서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무연자비를 살펴봅시다.

이 큰 사랑, 무연자비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웃 종교인 기독교의 널리 사랑하라는 박애(博愛)와 유교의 사랑인 인사상(仁思想)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기독교의 사랑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어야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전제된 사랑이어서 지극히 제한적이고 강제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고 사랑해 주므로(내리사랑) 나도 하나님을 사랑해야(올리사랑) 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기독교의 이 올리사랑 때문에 존경 공경의 정서와 단어가 사라졌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 마음에 조금 맞으면 해해거리고 그렇지 못하면 울고불고 헤어지는 사랑싸움과 흡사합니다.

믿으면 사랑하고 믿지 않으면 저주하는 그러한 것입니다.

믿으면 은총을 내리지만 믿지 않으면 씨를 말려 멸종시키는 그러한 사랑이 기독교적 사랑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 했다면 어째서 자기를 절대적으로 믿도록 창조하지 못하고 불량한 문제아로 만들어 놓았는지, 그리고 자기가 만들었다는 자기의 자식들을 멸종시킨다는 극악한 협박을 하며 구애(求愛) 작전을 해야만 하는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겠습니다만 그러한 편벽되고 강제적인 사랑도 사랑이 될 수 있는가는 불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고자 합니다.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걱정하고 보살피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일진대 심판이 따르고 인간에게만 국한 되고 여기에 더해서 믿는 자만이라는 편벽되고 선택적이며 강제적인 기독교의 널리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박애(博愛)는 이미 사랑이라고 조차 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러면 유교의 사랑 인()은 어떤가?

유교의 인()도 내 가족을 사랑하고 그러고도 여유가 있으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입장입니다. 유교의 성자(聖者) 맹자(孟子)는 내 가족과 이웃을 구분하지 않는 사랑, 내 부모와 남의 부모를 구분하지 않고 공경하는 것은 금수와 같다는 극언을 하고 있으니 희한한 사랑, 별난 공경도 다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반해 같은 시대(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현인(賢人)인 묵자(墨子)는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사랑(兼愛)을 베풀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장 했습니다. 하지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공맹사상(孔孟思想)에 고착되어 있는 중국 사람들의 인 사상(仁思想)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지는 못했습니다.

유교의 주사상인 인(사랑)도 인간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제한적인 사랑이라고 밖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살펴본 기독교의 박애, 유교의 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 산승의 억지소리가 아니라 그들이 성전(聖典)이라고 하는 바이블과 유교경서에 있는 말씀들 입니다.

 

그러면 이 산승이 큰 사랑이라고 말하는 자비, 자비 중에도 무연자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심(慈悲心)이 생기게 된 동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던 중 길 옆에서 아주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살펴보니 숲 속에 어린 사슴 한 마리가 덫에 걸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정황을 본 그 사람의 가슴 깊은 곳에서 측은하고 불쌍하여 구해 주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엔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살생도 마다 않던 그 이었지만 괴로워하는 사슴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처럼 느껴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 남의 고통을 어떠한 방편을 써서라도 덜어주고 구해 주려는 마음이 자비심(사랑의 마음)이라고 부처님은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나를 믿고 안 믿고도 상관없고 가족이다 남이다도 개의치 않고 끝내는 사람이다 동물이다, 라는 구별도 없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이 베푸는 사랑을 무연자비(無緣慈悲) 즉 조건 없는 사랑, 큰 사랑이라 합니다.

믿어야 사랑 해주는 기독교의 사랑과 내 가족 우선의 유교의 사랑과는 비교조차 해서는 안 될 부처님의 조건 없는 자비, 넓고 깊고 큰 부처님의 사랑이 느껴질 것입니다.

더구나 부처님께서는 불교를 모르는 중생, 어리석은 중생, 죄업이 많은 중생, 불교를 비방하는 중생을 더 걱정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마치 못된 자식 못난 자식을 더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부모님처럼 ……

심판하여 지옥 불에 밀어 넣거나 방관하지 않고 불난 집에 갇힌 어린 자식을 구해내 듯 끝까지 어루만져 그 중생이 편해질 때까지, 그리고 당신처럼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이 될 때까지 보살펴 주시는 것이 부처님의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중생을 부처님으로 파악하신 점, 모든 중생의 생명 가치를 평등하게 보신 점은 이 세상의 어떠한 성인들의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이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뭉쳐놓은 것보다도 더 큰 사랑이 부처님의 조건 없는 사랑, 무연자비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이 큰 사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불자님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부처님의 중생사랑은 물 공기 나무 흙 등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과 같습니다.

이 자연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 미운 놈 고운 놈 가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혜택을 받는 쪽에서 고마움을 알아주던 말던 다만 무한히 주기만 합니다.

이 자연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로 하는 자에게 그 중생이 만족 할 때까지 주었다는 생각도 소리도 없이 주기만 합니다.

부처님의 중생 사랑은 이러합니다.

부처님은 이 큰 사랑으로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어 편안케 해주시기 위하여 사바세계에 오셨던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부처님의 이 큰 사랑의 마음을 되새기며 아집과 독선 편견과 갈등에서 벗어나 모든 이웃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삶을 살아봅시다.

그리하여 온 우주의 모든 생명들과 손잡고 함께 행복을 나눕시다. 나무아미타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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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평법보 309호에 개제된 주지스님의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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