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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뿌린 것은 반드시 자기가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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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평사 작성일18-09-18 11:26 조회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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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뿌린 것은 반드시 자기가 거둔다

(자기가 죽인 부하가 외동아들로 태어나 원수 갚은 2군 사령관 박은용 중장의 실화)

1971년 여름, 당시의 2군 사령관 집안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한 불행한 사건이 불어 닥쳤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사령관의 외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경주 감포 해수욕장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물속의 뾰족한 바위 끝에 명치가 찔려 죽은 것이었다.

인물도 빼어나고 평소에 그지없이 착하고 공부도 잘해서 큰 기대 속에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사령관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슬픈 나날을 삭이고 있었다.

이윽고 팔공산 동화사에서 아들의 49()를 지내던 날, 스님들의 독경과 염불을 들으며 아들의 명복을 빌던 사령관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패를 모신 영단(靈壇)을 향해 벽력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너 이놈의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 이놈~!”감히 보통 사람으로는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있는 대로 퍼붓고는 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법당을 뛰쳐나가 버렸다. 독경하던 스님과 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돌발적인 소동에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그날 밤 1시경, 2군 사령부 헌병대장이 나(일타큰스님)를 데리러 왔고, 나와 마주 앉은 사령관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었다.“6.25 사변 당시 저는 육군 30여단 여단장을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늘 애국심과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었던 저는 백두산 꼭대기에 제일 먼저 태극기를 꽂기 위해 선두에 서서 부대원들을 지휘하며 북진에 북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문(電文)이 날아왔습니다. ‘지휘관 회의가 있으니 급히 경무대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경무대를 향해 출발하면서, 평소 아끼고 신임하던 부관에게 거듭거듭 당부하였습니다.지금 들리는바 정보에 의하면 중공군 수십만 명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만일 내가 시간 내에 돌아오지 못하면 부관이 나 대신 백두산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아라.’

그런데 가는 날이 바로 장날이라더니, 그날 저녁 중공군 30만 명이 몰려와서 산을 둘러싸고 숨 쉴 틈 없이 박격포를 쏘아대는 바람에 우리 부대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몰살을 당하였습니다. 뒤늦게 급보를 받고 달려가 보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부관을 찾았습니다.부관은 어디에 있는가?”얼마동안 찾다가 어찌 그 와중에 부관인들 무사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한 가닥 희망조차 포기한 채 허탈한 마음으로 상황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당연히 죽었을 것으로 여겼던 부관이 멀쩡한 모습으로 들어왔습니다.부관 ! 너 다행히 살아 있었구나. 그나저나 어떻게 너는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죄송합니다. 실은 온천에 있었습니다.”온천? 이 위중한 상황에 온천을 했다?

순간 저는 분노에 거의 이성을 잃었습니다.너 같은 놈은 군사재판에 회부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내 손으로 처단하겠다.”어찌나 부아가 치미는지 그 자리에서 권총 세 발을 쏘았고, 부관은 피를 쏟으며 나의 책상 앞에 꼬꾸라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21년 전의 일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 낮 아들의 위패를 놓은 시식상(施食床) 앞에 그 부관이 나타 히죽히죽 웃으며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였으므로 엉겁결에 일어나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그날 죽은 부관이 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틀림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부관이 죽은 날과 아들이 태어난 날짜를 따져보아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큰스님께 이런 말씀이라도 드려야 위안이 될 것 같아 깊은 밤도 불구하고 스님을 모셔오게 한 것입니다.”

당시의 2군 사령관이었던 육군 중장 박은용 장군의 이 실화는 불자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부관은 전쟁터에서의 자기 행위가 비록 죽을죄임을 알지만 총을 맞는 순간 품은 원한으로 앙갚음하기 위하여 상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갖은 재롱으로 사랑을 받으며 정을 들일대로 들여놓고 커서는 공부까지 잘하여 기대를 부풀려놓고 갑자기 죽어버림으로서 아버지의 가슴에 총 구멍 보다도 더 아픈 구멍을 낸 것이다.

이처럼 당연히 죽여야 할 자를 죽인 경우에도 원한이 되고 그 원한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앙갚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털끝만큼의 오차도 없는 인과응보의 철칙이다.

대개 원수가 배우자나 자식으로 온다는 말이 있는데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째서 그런가하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언젠가 때가 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열배 백배로 앙갚음 하리라는 원한을 품게 되는데

그 앙갚음을 하려면 가장 가까운 관계 친한 관계로 만나야 쉽기 때문에 그렇게 찾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부부와 자식이 반드시 전생의 원수인 것만은 아니다.

전생에 나에게 크게 덕을 본 사람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니 모두 원수로 의심할 일은 아니며 서로의 현실관계를 지혜롭게 살펴보면 스스로 짐작이 된다.

인과를 아는 사람은 원수 갚으러 온 것 같으면 달게 받으면서 원한이 빨리 풀리도록 무조건 잘 대해주고, 은혜를 갚으러 온 것 같으면 덜 받으면서 더욱 잘 대해 준다.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을 거두게 되고, 악행은 원수로 찾아오며 선행은 은인으로 찾아오는 것이니 인과응보의 진리를 명심하여 악행은 아무리 작더라도 절대로 저지르지 말며 선행은 아무리 작더라도 부지런히 닦아 모든 생명을 이익 되게 해야 한다.

모든 현상에는 결코 우연은 없다. 반드시 그렇게 될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로서의 여러 가지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인과응보는 우주의 철칙이며 생사윤회는 생명계의 틀림없는 현상이니 사람이라면, 특히 불교인이라면 절대로 인과의 도리를 어기지 말아야 하며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비심을 일으켜서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아끼고 사랑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살아야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아미타불 ! ! !

@ 이 글은 근대 한국불교에 큰 발자취를 남기시고 열반하신

일타 큰스님께서 자주하신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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